어느 산에 가면 어느 봉우리가 능력봉이고 어느 기도원에 가면 어느 골짜기가 능력골짜기며, 어느 바위가 능력 바위라는 등의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들은 기도를 해도 아무 곳에서나 하지 않는다. 산새를 보고 위치를 따져서 어디에서 해야 능력이 강하게 임할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자리를 잡는다.
예수 님도 바위에 손을 얻고 기도했다거나, 습관을 쫓아 기도 했으니라는 말로 자기들의 그런 행동이나 판단을 합리화 시키려한다. 하지만 나는 딴지(넘어지게)를 걸고 싶다. 과연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니 주님의 일하심이 부정되거나 최소한 제한 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기도는 능력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쳐서 주님께 복종시키는 것이다. 오직 주님만 일하심을 알고 주님께 순종할 믿음을 구하는 것이 기도다. 그런데 능력을 받겠다는 것은 특별한 일을 해서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사람들을 감동 시키겠다는 발상이다. 하나님이 기도할 줄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하여 성령으로 기도하게 하는 것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6절)
다르게 말하면 우리 기도는 자기 욕심을 따라 구하는 기도이기에 성령이 탄식하며 기도하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기도하는 장소를 어디로 정하느냐에 따라서 능력이 임하기도하고 임하지 않기도 한다면 주체가 누구인가? 성령도 아니고, 주님도 아니며 하나님도 아니고 인간이 된다. 결국 인간이 어느 장소에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이 능력을 줄 수 밖에 없거나 주지 않아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어느 기도원이나 가면 능력받는 바위나 골짜기 봉우리가 몇개씩 정해져 있다. 물론 그곳에서 기도한 사람들이 능력을 받았다니 믿어 주어야 하겠지만, 반대로 그곳에서 기도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했으면 응답을 못받거나 부족한 것으로 받았다는 말인가? 분명 성경은 하나님이 알아서 은혜를 주시기도 긍휼히 여기기도 하신다고 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9:15)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롬9:18)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기도를 하루에 수 시간씩 하고 금식을 밥먹듯이 해도 아무 것도 아니다. 어찌하여 주님의 은혜를 부정하는 말들을 당당하게 한다는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한번 기도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그방법을 고수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긍휼이나 자비와 은혜를 도무지 인정하지 않는 자들 같다. 언제 이스라엘이 원해서 애굽에서 구원됐던가?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때에 기도(탄식)하게 하여 구원하심 아니던가? 언제 우리가 주님께 구원해 달라 기도해서 구원받는 믿음을 고백하게 되었던가?
창세전 어미 배속에 잉태 되기도 전에 선택하심이 아니던가? 분명 하나님이 일하셔서 주신 은혜를 왜 자기들의 공로나 세상 조건으로 돌린다는 말인가?
그런 자들의 말을 듣고 또 그들이 알려주는 곳으로 가서 기도하면서 응답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자들이 널려 있다. 오히려 기도하면서 자기 욕심을 따라 구하는 죄를 발견하고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것이 기도 아니던가? 진정한 기도는 특별한 능력도 아니고, 만사 형통도 아니다. 오직 죄인인 내가 변해야 되는 것이다. 어디에서 하면 어떤가? 길거리에서 걸으면서 하고, 원수 앞에서하고, 내가 살았나는 그 자리에서 중얼거리며 기도하면 어떤가? 자기를 사랑함이 곧 생명을 잃어버림이라는 성경을 읽어보지 않았던가?
여러분 기도 하십시요. 날마다 나를 죽여 주시고 주님의 성령께 순종 할 믿음을 구하십시요. 나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받을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자기는 이미 그 수준을 벗어났다 할 사람들 많을 것이다. 정신 나간자들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말씀이 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고전10:12)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만 믿고 자랑하며 주님으로 기뻐하고 주님 때문에 소망 가운데 살아 갈 믿음을 오늘도 내일도 구해야 할것이다. 이제 능력봉이니 능력 바위 따위는 배설물로 여기고 주어진 삶속에서 어느 곳이든 내가 살아나려 하는 그 자리에서 무시로 기도할 것이다. 기도의 공로 따위는 천한 초등학문임을 알고 날마다 자기 부정과 제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갈 믿음을 구하고 그 주님이 믿어지심에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