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의 칼럼방

†무소유와 신앙 †

고물목사 2001. 8.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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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태복음 4장 4절)









무소유와 신앙

 

†무소유와 신앙 †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이것 뿐이요.
제 2차 원탁 회의(圓卓會議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이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語錄)}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퍼온글)]

세상이나 세상에서 착하다는 사람들 중에 일부는 무소유를 하나의 진리나 존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소유를 적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그 사람이 욕심이 없는 것이니 그만큼
죄를 덜 지을 것이고 그것이 착함이라 생각한다.
물론 소유에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경쟁이 줄어들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덜 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착함인가?
또는 죄를 초월한 것인가?

착함의 기준이 세상이나 가난한자를 중심으로 한다면 그들의 말도 맞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준을 두고 산다면 동의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소유나 적은 소유를 착함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하여 적게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게을러서 적게 가진 사람도 있다.
또 열심히 일을해도 늘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반면 놀아도 늘 풍족하게 사는 사람과.
열심히 일해서 풍족한 사람도 있다.

성경도 적은 소유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주어진 상황을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일하시는 주님을 믿으라는 것이다.
주님이 살아서 일하심을 믿을 때 모든 일을 주님과 연결하여 생각 할 것이다.
그것이 날마다 감사가 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 모든 상황을 허락하시고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일하시는 주님을 믿기에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이 나온다는 말이다.
이것이 약속을 받아 살아가는 새로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즉 일부러 적게 가지려는 것도 아니요,
또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주어진 모든 삶을 통해 살아서 일하시는 주님을 느끼고 그 주님만 믿고 자랑하는
삶이 나온다는 말이다.
이는 기준을 세상이나 사람에게 두지 않고 오직 말씀에 두기 때문이다.

성경은 착함이나 의로움, 진실을 사람의 행위에 두지않고 하나님께만 둔다.
그래서 말씀으로 사는자는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이 드러 나게 되어 있다.
만약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사람에게 희망을 두거나 사람을 본 받으라 가르치는
자가 있다면 그의 신앙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8-9)

어둠은 주를 모르는 상태이다.
주 안에서 빛으로 드러나는 것이기에 빛의 자녀는 주님만 믿고 드러내는 삶이다.
즉 주의 자녀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 소유에 마음을 두지 않고 살게 된다.

많으면 많은 대로 떡(돈,명예,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삶이다.
또 적으면 적은 대로 소유에 넉넉함에 생명이 없음을 고백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기에 적은 것으로 살든지 많은 것으로 살든지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주님의 은혜만 찬양하는 삶이 있게 된다.

인간적으로는 적은 것으로 사는자가 기이하고 신기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고 착함도 아님을 알자.
주 안에서만 진실도, 착함도, 의로움도 인정됨을 잊지 말자.
이는 주님만 의로우시고 착하며 진실된 분이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이나 세상에는 의가 없음을 알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사람을 본 받으려 하지 말자.
이미 다 이루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되신 주님의 공로만 믿고 살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오늘도 살아서 일하시는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어느 자리로 인도 하시든지
주님의 일하심을 순종하고 감사할 믿음을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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