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따라서 사랑에 정의를 내릴 때도 다양한 입장이 있다.
그 모든 입장을 수용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인이나 유명한 학자의 말과 베스트셀러 같은 책의 말을 인용하여 자기 입장을 말하게 된다.
고물이 말하는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먼저 성경 한 구절을 인용하여 보자.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잠언27:5)
솔로몬 왕이 저자로 되어 있는 구약성경중 잠언서의 내용이다.
솔로몬 왕은 진정한 사랑을 숨겨주는 것보다 면책이 나은 것이라 했다.
이에 고물도 동의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적당히 덮어 주는 것을 덕스럽다고 하거나 사랑이 많다는 말로 표현한다.
물론 그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거나, 나중에 그가 스스로 뉘우치고 돌아온다면 숨겨주는 것도 하나의 사랑의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뉘우치고 돌아오는 시간까지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사랑을 말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말해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 사랑한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대가(희생)를 치루어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잘 못된 것을 말해서 바른 길을 알려 주는 것이다.
물론 그가 수용 안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화가 돌아 올 것이다.
그럴 지라도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당연히 잘못을 알려주고 그가 뉘우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오늘 많은 사람이 적당한 선에서 덮어주다가 어느 시기에 자기에게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욕을 하고 미워하고 원수로 생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방관이며, 힘이 없어 말을 못하거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모른 척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스스로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그럴 경우 돌아오기까지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약 피해자가 자신이며 그 피해가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문제로 죽음에 이른다면 어찌 할까?
그쯤 되면 감추거나 모른 척 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기에 여유를 부리면서 덮어 주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기 쉽다.
상대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사랑이라 할 때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 자리에 있을 때도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을 덮어 주기를 바라는 경위 많다.
또 상대에 잘못을 지적 할 때 많은 사람은 그런 너는 잘못이 없느냐고 반문을 한다.
한편 잘못 없는 사람만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면 누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으실 때도 그냥 잘못을 덮어놓고 죽으신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란 자기 백성을 모델로 얼마나 사람들이 악하고 잘못되었는가를 지적하고 책망하면서 죄 없는 예수님 자신이 죽어야 함을 선포하고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빛이 없기에 빛이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다는 선포이다.
이같이 성경도 무조건 사랑이 아니라 잘못을 책망하고 그것을 깨닫고 돌아오는 자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물은 진정한 사랑은 잘못을 책망하고 바른 길을 알려주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덜 주도록 하는 것이며, 본인의 삶에서도 스스로 아픔을 덜 갖게 하는 것이라 하겠다.
'고물의 칼럼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관악산과 복음 11 (길은 하나) (0) | 2001.08.18 |
|---|---|
| 관악산과 복음 10 (사라졌네) (0) | 2001.08.13 |
| ** 관악산과 복음 9 (찬양) ** (0) | 2001.08.05 |
| "왜. 기도가 힘이드는가?" (0) | 2001.07.26 |
| ** 관악산과 복음 7 (교만) ** (0) | 2001.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