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는말이 산이 있으니 오른다고 한다. 물론 산이 그곳에 있으니 오르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보아야 한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라 한다. 그러면서도 산에 오르고 정상에 서는 마음은 언제나 뭔가를 이루고 정복했다는 마음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언제인가 장애인이 가족들을 의지하여 산을 오르고 정상까지 다녀온 것을 드라마 식으로 만들어 방영하는 것을 보았다. 소감을 말할 때는 자기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남을 의지하여 올라간 산이 무슨 자신감이며, 그런 자신감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아울러 정상인이 산을 정복하고 그 중에 얻은 자신감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이왕이면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라. 당당하게 살아라. 보람된 일을 하라.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세상은 언제나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사는자들을 원 한다. 그들을 모델로 삼아 세상이 힘으로 유지됨을 보여주고 힘을 얻기위해 열심히 사는 자들을 찾는 것이다.
오늘 수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산 정상에서 발아래 세상을 바라보면서 성취감에 도취되어 하산한다. 물론 아주 가끔은 아무 생각없이 산에 오르고 내려오는 자들도 있다. 세상은 자신있는 자들을 이용하여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가를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감과 성취욕을 안고 하산하지만 모두 세상이 인정하는 성공을 하는 자들이 아니다. 즉 자기 스스로 갖는 자존심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자존심을 세워서 살라고 한다. 그것도 못하느냐고 하는 사람은 자기는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말이다. 같은 일을 할 때도 어떤 조건에서 했느냐로 서로 잘남을 자랑한다. 나는 눈오는 날도 몇시간 만에 다녀왔다. 나는 비오는 날에 아무일 없이 정상을 정복하고 왔다. 언제나 자기가 인정되기를 원하는 인간들의 자존심 세우기다.
이는 그리스도인들도 다르지 않다. 수 많은 사람들이 자칭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자기가 열심히 한 어떤 결과를 보람과 긍지로 삼고 그것을 자랑거리요, 하나님 앞에서 상급을 요구할 조건으로 가지고 살아간다. 주님은 선줄로 생각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하셨는데 죄인들은 서 있는 자기를 드러내고 그것으로 위로를 받고 살려고 한다. 마침 산에 올라 정상에 섰던 기분으로 스스로를 인정하고 자신감으로 살려는 것과 같다. 즉 자기 포기나 부정이 아니라 긍정으로 스스로를 자랑거리로 삼는 것이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즉 스스로 서서 살아갈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직 은혜가 임하여 주님 안에서 의로운 자로 인정받아 살아감을 안다면 결코 자기를 드러낼 수가 없다. 자기를 드러내고 열심을 드러내는 것은 모든 인생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교만이다. 산을 오르고 정상을 정복했다면 그 자신이 열심을 냈고,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오늘도 주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믿음안에서 살아감을 드러내는 증인으로 부르신 성령의 일하심을 알기에 살아서 일하시는 하나님만 자랑하게 된다.
오늘도 산을 오르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개척을 하고, 전도를 하며, 기도를 하는 우리가 할 일은 나의 열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열심에 의해 살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런 증인의 삶은 믿음이 선물로 주어지고 지혜가 임하므로 가능하다. 건강을 주신 은혜가 아니고 어찌 산을 오르면 생명을 주신 은혜가 아니고 어찌 열심을 낼 수 있으랴? 세상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의하여 성취되고 마지막 날에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셨으니 그것을 아는 지혜가 주어짐이 복이다. 그 은혜로 인하여 오늘도 자기의 부족하고 악함을 내어놓고 자기를 부정 하는 자로 살게 된다.
오늘도 주님의 믿음이 주어짐을 알고 주님안에서 자기를 부정하고 주님만 자랑하는 지혜가 임하기를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