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만이 아니라 산마다 약수터 한 두개는 반드시 있다. 그런데 약수터 마다 사람들이 줄을 선다. 특히 관악산 에는 여러개의 약수터가 있고 그 약수터마다 사람들이 끊어지지 않는다. 시내와 가깝기 때문이며, 그만큼 자기 건강과 가족 건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먹고 또 좋은 것을 얼마나 먹느냐로 인생을 좌우하려 한다. 그래서 약수터에 사람들이 몰린다. 좋은 물 먹고 건강하게 오래 살려는 발버둥이다.
오늘 날 많은 기도원에서는 자체적으로 건강을 위한 메뉴를 준비하여 기도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그 중에는 자기 기도원 물이 영험하다 하여 그물을 먹게하고 상처에도 바르게 한다. 만병 통치약 인양 선전을 하고 그것으로 특별한 기도원 이란 이름을 날리려 한다. 그러면 인간들은 자기들 욕심에 맞는 것을 제공하는 것을 쫓아 그런 곳을 찾는다.
이렇듯 교회란 이름을 가진 자들도 세상이나 다를 것이 없다. 온통 자기들 영광(욕심)을 위해 하나님도 이용하려 든다. 그런데 교회(?)가 그것을 충성이고 믿음 좋은 것으로 가르친다. 즉 자기 욕심을 위해 열심 내는 것이 하나님께는 영광이고 자기에게는 응답이 된다고 한다. 그들은 기도(?) 열심히 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랑거리를 삼으려하고 하나님을 마음대로 조종하려 든다. 그런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약수 물을 많이 먹으면 건강하게 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33:19)
우리 인생은 온통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인정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이미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만 믿고 자랑하며 살게 된다. 주님의 성령이 일하셔서 나타내는 열매로 그런 삶이 드러난다. 그래서 자기 자랑도 없다. 성령이 일하셔서 나타난 열매임을 알기 때문이다. 고로 무엇을 얼마나 해서 이런 것을 받았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살아감을 자랑 할것 뿐이다.
진정 교회라면 인간에 행위에 마음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공로에만 의미를 두고 살 것이다. 그 은혜로 믿고, 고백하며 살아감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약수를 많이 먹든지 못 먹었든지 주님의 은혜로 살고 병들고 죽는 것을 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가 나온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5:20)
오늘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믿어지거든, 무엇으로 사는가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아니 그런 증인의 삶이 나올 것이다. 그런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원 하면서...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