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의 칼럼방

"관악산과 복음 3 (도토리 키재기)"

고물목사 2001. 7. 14. 10:41
†도토리 키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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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키재기? †





옛 말에 도토리 키재기란 말이있다.
한마디로 서로 잘났다고 하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도토리
키를 재본들 그키가 그키지만 서로 크다 자랑하는 것을 조롱하는 말이다.
고물이 관악산에 오르면서 스스로 잘난척 하는것 중에 하나가 얼마나 빨리
정상까지 갔다 오는가를 재(시간)는 것이다.
물론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하는것은 아니지만 좀더 시간을 단축 시키려는
것은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올림픽의 외침(기치)과 같다.
이왕이면 가장 빠른 시간에 올라갔다 오고 싶은 욕심이다.
그리고 스스로 단축된 시간을 보면서 뿌듯한 마음을 갖는 이것이 바로
자기를 사랑하는 죄인의 모습이다.
죄인이 잘한들 얼마나 잘하고 못한들 얼마나 못하겠는가?
그런데 서로 잘한다 도토리 키재기를 하니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가소로울까?

오늘날 교회가 그렇게 인간 높이기를 한다.
우리교회는 다른교회보다 다르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이나,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특별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런 정신이다.
바로 힘으로 자기를 유지해 가는 세상의 정신과 일치하는 애굽의 정신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지만 온통 자기들 잘난 맛에 사는 죄인들의 놀이터이다.
그 속에서 누가 잘하는가 서로 키재기를 하고 있다.
다시말하면 누가 더 열심히 욕심을 부리고, 더 많이 모으고, 더 많이 칭찬을
들었는가를 자랑하는 장소가 예배당이다.

복음을 안다는 자들도 자기들과 같은 생각이 아니면 비복음이라 하고, 같이
생활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을 알고 믿음이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느냐?
무슨 책을 많이 읽었느냐?
누구와 대화를 많이 하느냐?
어느 교회로 모이느냐 묻고 그것을 기준으로 복음과 비복음을 나누고 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신 주님을 믿는다면서도 다시 행위를
들고 나오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말은 잘하는데 행동은 안따르니 비복음 이란다.
물론 믿음은 삶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는 자라면 주님이 이루셨기에 그 공로로
의로워지고 죄 사함받고 구원 받는 것임을 믿고 산다.
그가 무엇을 하든지 구원을 무효화 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같은 복음이라 하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서로를 이단이라 하거나
자기는 빠지고 상대만 이단이라 한다.

오늘도 주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자기 백성(택한자)을 찾으시는 것은 주님의
희생을 아는 자를 찾는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현실은 길을 잃어버려서 길이신 주님을 몰라보고 사는 자들이 많다 그
속에서 자기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시는 주님을 믿는다.
그 주님을 믿고 살면서도 여전히 죄아래서 신음한다.
그래서 오늘도 주기(자기부정)를 소원하며 기도하고 주님을 믿고 사는 것이다.
그런 자기를 발견할 때마다 자기 부정이 나오고 주님의 공로가 어떠함을 다시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자들은 공부 많이하여 지식으로 구원받거나 의로워지는 것이 아님을
고백하고,공부 안하는 자도 경험이나 노는 것으로 의로워짐이 아님을 고백하며
오직 주님의 십자가 은혜만 바라보고 믿고 살 것이다.
공부할 상황을 허락하심도 주님이시요, 못할 상황도 주님이 허락하심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상황이나 행위를 가지고 믿음을 부정하는가?
주님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생각으로부터 죄를 지적하고 계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그러한 주님 이름으로 주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는 자들이 인간의 행위에
머물러서 정죄한다면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이미 마음으로부터 날마다 죄를 범하고
사는 죄인임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행하였든 행하지 않했듯 여전히 죄인인 것이다.
안 했으니 한 사람보다 의로운 것이 아니란 말이다.
오늘도 나는 주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에 의한 의인인가?
자기 행위로 의로운 자로 사는가?
행위로 의로워 질 죄인이 없음을 알고 주님의 은혜만 바라보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
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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