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의 칼럼방

†누가 이루는가? †

고물목사 2001. 7. 11.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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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시록 22장 12-13절












†누가 이루는가? †

 


제목에서 벌써 답을 말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미 지혜가 임한 자들은 문제지를 받으면서 답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는 시험이 전혀 어렵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험을 통해 자기 지식이 확고해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답을 모르면 시험이 고통이기에 할 수만 있으면
도망 갈 궁리만 할 것이다.
물론 일부러 시험을 자초하란 말이 아니다.
또 시험을 즐기거나 자만에 빠지란 말도 아니다.
한편 답을 안다는 것은 이미 답을 알려 준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아도 교만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겸손하며 알게하신 분을 나타내고 드러 내게 되어 있다.
그가 지혜자요, 제자이다.


오늘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무엇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는가를
알고 사는 자이다.
그들은 이미 인생의 답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답을 아는 것에 교만하지 않고 자기를 나타내지도 않는다.
이미 스승에 의해 알아졌기에 알게하신 스승님만 자랑하며 살게 된다.
그것이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선지들에 삶이었다.
그들은 결코 알고 있는 자기를 나타내기 위함이 아닌 알게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외치고 자랑하는 삶이었다.
물론 오늘 그 은혜를 입고 사는 자들은 동일하게 자기를 부정하고
주님의 살아서 일하심만 드러내는 삶이 있을 뿐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3:12)

사도의 고백을 보면 이미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하여 잘못
오해하면 믿음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에 사로잡혀 살면서 성경을
기록하는 사도가 믿음 없이 성경을 기록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럴 것이면 성경은 거짓이 될 것이다.
사도는 믿음이 없거나 불안한 심정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는 자기를 부정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모든 사람은 행위를 통해서 무엇이든 평가하지만 성령에
사로잡힌 자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 안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며
자랑하는 삶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세상은 도무지 믿는자의 생각을 이해 하지도
못하고 동의도 못한다.
그런 세상이 그리스도의 제자를 인정하거나 친구로 받아
들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세상이 교회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둘중에 하나다.
교회가 주님을 버렸거나, 세상이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리스도 안에 잇으면 이미 세상이 아니라 주님의
몸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사명을 두고 살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몸으로 살기를 원하지도 않는 세상이 교회를
친구로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교회가 교회가 아닌 것이다.
고로 세상과 친구 된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떡으로 세상을 사로잡은 교회나, 착한 행실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교회는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 인간들의 교회일 뿐이다.


사도는 그런 교회를 부정하고 있다.
자기의 행위로 얻은 것도, 이룬 것도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붙들린 것을 쫓아 가는 것만 있다고 한다.
즉 자기가 한 것이 없음을 고백하는 말이다.
주님의 성령이 살아서 일하신 결과로 나타난 열매 임을
고백하여 주님만 찬양하는 말이다.
이것을 흉내 내라는 말이 아니다.
오늘도 성령이 살아서 그런자를 만들어 내신다.
성령이 아니고는 그런 고백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 자랑은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눅17:10)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주님이 일하신 결과로 나타난 열매를 성경은 성령의 열매라 한다.
즉 성령의 열매란 인간들이 전혀 관여하지 않는 순수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찬양하는 말이다.
그러니 오늘 교회가 성령의 열매를 맺자고 하는 말은 무식한
소리이거나 하나님을 무시하는 불신자의 고백일 뿐이다.
하나님이 알아서 맺을 열매를 죄인들이 모여서 교회라 하고
자기들의 행위로 열매를 맺겠다 하니 그들이 교회란
이름으로 모이 사단의 회일 뿐이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계2: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계3:9)


이런데도 아직도 자기들의 행위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고, 세상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 할 수있는가?
물론 하나님이 죽은 하나님이라 생각하는 불신자라면
가능 할 것이다.
우리는 사도의 고백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굳이 있다면 죄짓는 일 뿐이다.
오직 성령이 일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고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 살도록 하신다.
그 주님의 성령이 임한 자에게서 자기를 부정하고 주님의
일하심만 자랑하는 고백이 나올 것이다.

오늘도 주님의 성령이 살아서 일하심이 느껴지고 믿어지는가?
혹시 자기를 통해서만 나타나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지는 않는가?
자기가 날마다 죽어야 할 죄인임이 인식되지 않으면
그런 요구를 할 것이다.
오늘도 고물은 주님 앞에서 그저 죽여 주시기를 바라고
주님이 살아서 일하시기만 기다리는 삶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만이 이루심을 믿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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