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의 칼럼방

"무엇으로 생명을 확인?"

고물목사 2001. 6. 25. 03:18

"무엇으로 생명을 확인?"



사람들이 살면서 하는 말 중에 살아 있음을 확인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아직도 살아야 하고 삶의 의미가 있다는 자기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그런 말을 할 때 대부분은 일을 통해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열심히 살면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병마에서 치료 된 것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기도한다.
자기의 즐거움을 통해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는 인간이 바로 죄인이다.
너무 바쁘면 일에 치여서 살아 있는 것도 의식을 못하고 살기도하며, 일이 없어 놀기만하면 무의미한 인생이라 한탄을 하기도 한다.
온통 일에 의미를 두고 살아 가는 죄인들이다. 그래서 일에도 차등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
즉 많은 사람이 인정하고 동경하는 일이면 보람이 더 크고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세상은 삶의 가치나 살아 있는 증거를 일을 통해 확인하기를 원한다.
세상은 일하지 않는 자는 쓸모(놈팽이,백수,건달 등)없는 인생이라 한다.
오직 일에만 의미를 둔다. 물론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일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일을 위해 창조 된 것이 아님을 모르기에 세상은 오직 일로서 인생의 가치를 평가 한다.
오늘도 세상은 천한자와 귀한자를 무슨일을 하느냐로 평가하고 있다.
쓰례기를 치우고, 고물을 줍는 인생을 천한 인생이고, 마지못해 인정하는 인생일 뿐이다.
그러나 큰 회사를 경영하고, 공무원에, 반듯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면 우러러 보고 가치있는 성공자로 취급한다.
그런 세상에서 자기 가치를 알아주지 않기에 스스로 하는 일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9)


하나님은 무슨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누구에 지배를 받고 사느냐를 묻는다.
즉 세상 원리에 순응하는 삶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눈다.
일에 차등이 아니다.
만약 성경에 하나님도 일에 차등을 두신다면 왕은 구원이 빠르고 상급이 더 많은가?
사도나, 선지자는 구원이 당당하고, 상급도 가장 좋은 것인가?
반면에 말단 사원이나, 길거리를 쓸고 고물을 줍는 사람은 천한 구원이며, 상급도 작은 것인가?
그렇게 말할 사람이 있다면 아마 성경을 전혀 모르는 무식쟁이나 불신자 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교회(?)를 들여다 보자 교회라는 자들이 무슨일을 하느냐로 교인을 평가하고 있다.
그냥 평범하게 하나님만 믿고 사는자는 교회(?)안에서도 무시를 당하고 그저 숫자에나 넣어주는 정도이다.
하지만 열심이 있고, 직분이 있는 자는 대접이 다르다.


이왕이면 장로나 목사를 하려는 것도 그런 대접의 차이를 느끼는 죄인들의 탐욕 아닐까?
그도 안되면 안수집사나, 권사님 소리는 들어야 최소한의 체면 유지는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위기다.
도데체 왜 하나님을 믿는지 궁금하다.
아니 하나님을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하나님은 일의 중요도와 직분의 높고 낮음을 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직분이 높(?)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직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그럴 것이면 모두 직분을 높여주고 좋은 직장만 차지하게 하실 것이다.
하지만 주님이나 제자들, 사도들을 보라 누가 세상에서 높은자로 살았는가?
누가 직분으로 구원받고 상급을 받았다고 했는가?
그런데도 교회가 직분을 따지고 직분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서로 직분을 얻으려 돈을 쓰고 있으니???
그렇다고 직분을 안받는것은 하나님의 영광인가? 그도 아니다.
다만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자기의 연약함과 악함을 알아서 날마다 자기를 부정하며 주님의 십자가의 의로운 보혈만 믿는 삶이 있을 뿐이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오늘 사람들이 일을 가지고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고 일을통해 삶의 의미를 드러 내려는 것은 인간중심이며, 자기 과시일 뿐이다.
즉 자기를 부정하기 싫은 사람은 자기가 인정받기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통해 자기가 쓸모있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아직은 쓸모있는 나를 무시하지 말아 달라는 자기 자존심 내세우기라면 심한가?
나이들어서 헬스를 하는 여자분을 보면 아직은 나 안죽었다는 자기 발견(존심세우기)이다.
젊으니들은 더욱 튼튼한 몸으로 남에게 당당하게 살려는 자기 긍정(존심세우기)이다.
늘 자기가 인정받기를 위해 이런 저런 일을 골라 하면서도 그것을 희생이나, 봉사, 서비스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 사기를 친다.
그들에게 자기 부정이란 단어는 거북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그것이 중요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역할이든 오직 예수 그리스만 드러내는 증인으로 주어진 각본임을 알아야 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2: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행5:32)

우리가 살아 있음을 확인 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있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믿고 누구로 인하여 소망 가운데 즐거워 하는가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살았으나 죽은 인생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 당신은 어느 자리로 주님이 이끌어 가십니까?
그 자리에서 주님만 찬양 하십니까?
그런 믿음이 주어지기를 기도 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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