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5:22) "심판은 아들이" (2025.10.5)
"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
우리 대한 민국에 요즘 사법부에대한 국민들이 신뢰를 못하고 대법원장을 믿지 못하여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외치는 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들려옵니다.
대법원장은 재판관들을 대표하는 곳이지만 판사들의 판결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기에 대법원장도 사표를내라고 국민들이 외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론 판사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잘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그렇게 말하는 판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니 판사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 된 것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도 법이있고 판결을 내리는재판관이 있는데 재판관들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나라의 질서가 바로 세워지기 어려워지고 특히 신뢰를 잃은 판사가 하는 판결은 시시비비(是是非非-옳고 그름)가 생겨서 결국은 판사로서 기능을 제대로 할수 없게 될것입니다.
성경에도 판결에대한 수많은 사건들과 심판자가 등장을 하는데 최종적으로 판결은 하나님이 하신다인데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냐가 나누인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심판에 최종 판결자로 나타나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고 빼앗기고 포로가되고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삼상3:13)
구약 시대 사무엘이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고 제사장역할을 하기전에 이미 엘리 제사장이 있었고 그 아들들도 제사장으로 활동을 했지만 엘리는 아들들을 통제하지 않아서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제물을 부정하게 만들기도하고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등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엘리집에 대하여 행하실 심판을 기록해 놓우셨고 그 심판이 예고된 대로 엘리 두 아들 흠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게하셨습니다.
엘리 제사장도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겼다는 말을 듣고 의자에 앉아있다가 뒤로 넘어지면서 목이 부러져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삼상4:18)
구약시대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과 세상의 모든 이방민족들을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분으로 나와있습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자기 백성들의 죄값을 대신하여 흠없는 아들로 대신 죽게(구약의 5가지 제사의 제물처럼)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믿음으로 될 새로운 이스라엘)들을 자신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이 마지막 제물이 되어 십자가를 지고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구약의 모든 제사를 완벽하게 한번에 다 이루심으로 더이상 제사가 필요 없게 하시고 제물도 필요없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는 제사가 사라지고 제사가 없으니 제사장도 필요없고 제사장이 없으니 제사장을 돕던 레위지파도 그 역할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음을 믿는자가 새로운 이스라엘(혈통이 아닌 믿으로) 이 열두 제자를 부르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7:24)
율법으로 모이는 이스라엘은 실패로 끝이나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새로운 이스라엘이 시작된것이 신약인데 신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스라엘이 시작되는데 이 이스라엘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시며 심판하실 분으로 믿는 믿음으로 세워지는 이스라엘 이기에 그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안에서 알고 믿게된 제자들은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만 따르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기존의 이스라엘인 유대주의 자들과 새로운 이스라엘인 예수님과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데 기존 이스라엘이 새로운 이스라엘인 예수 그리스도를 여호와 하나님을 모둑한 죄를 뒤집어 씌워서 십자가에 죽인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예수만 죽여 없애면 새로운 이스라엘은 사라질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아들의 죽음으로 모든 죄인들이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길을 제공하시고 모든 심판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셨습니다.
오늘 날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복을 주기도하고 심판을 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찾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는 모든 심판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넘어왔음을 알고 믿는 사람들로 더이살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주님이 다 이루신 십자가만 바라보는자들입니다.
인간 적으로 보면 아들은 십자가에 죽임당하심으로 실패자같지만 예수님은 죽어야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이 주님을 가둘수 없는 심판주로 드러나게 하십니다.
"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6:40)
오늘 날 많은 교회들이 상황에 따라서 아들 예수님을 찾기도하고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을 찾기도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구하고 아들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에서 부하고 강하고 자녀가 많으며 땅이 많이 소유하고 권력을 가진자가 복 받은 자라하시기에 복을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하시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하셨으며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말라하셨으니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해봐야 들어주지 않을 것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당에서 기도하는 내용이 기도 내용에 따라서 복은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고 믿음은 예수님께 구하는 이상한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다 이루어 주리라 하셨으니 마지막 아들의 이름만 넣고 기도 내용은 아들과 상관없이 자기 원하는 것을 다 거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들의 이름으로 한다는 말은 아들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아들의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의미이기에 구약을 기준으로 기도하고 신약의 예수님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주님은 부자가 복 받은 사람이라하지 않으셨고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을 하나님의 복이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19:23-24)
"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6:8)
주님을 믿는 다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천국을 설명해 주신 신약 성경을 보면서 성령 받은 제자들이 기록한 성경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기도만 많이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안에서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 주님의 마음을 안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헌금하는 사람이 성도(성령으로 된 사람)입니다.
그 주님을 알고 믿는 자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인하고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길이요 진리이시며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거룩한 피만 바라보고 믿고 감사하며 주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자로 살게 하십니다.
성령이 그렇게 주님의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마지막 심판을 향해 살게 하십니다.
당신은 그런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까?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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