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의 설교방

(롬11:6) "은혜로 사는 자들?" (2017.2.26)

고물목사 2017. 2. 26. 08:03

(롬11:6) "은혜로 사는 자들?" (2017.2.2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의미가 세상 적이됩니다. 은혜란 단어를 사용 할 때도 나를 위해서 좋은 결과로만 나타나야한다는 것이지요. 죽을 자가 은혜로 살아났습니다. 죽을 병이 나았습니다. 망한 사업이 누구의 도움(은혜)로 망하지 않고 잘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좋게되었을 때 은혜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잘되었으니 기분도 좋고 잘되게해준 존재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당연히 나타내는 반응입니다. 이것이 세상적 사고방식입니다. 세상은 오직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 영광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모든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는 죄인들)을 말합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택하시고 구원할 자들을 구별하시어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자기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며 나라를 위하여 충성하고 국가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믿음을 선물로 받지 못한 자들은 도무지 이해를 못합니다.

오늘 말씀에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행위는 죄인에게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죄인에게서 나오는 행위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수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모든 인간(죄인)의 행위를 부정하고 창조주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의 죄값을 치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저주를 감당하셨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2:16)

타락하여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저주의 십자가에서 우리 죄값으로 죽임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아는자는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입니다. 이런 믿음은 인간이 원한 적이 없고 기대하지도 않았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인지도 몰랐습니다. 성령께서 알게하심을 깨닫고 인간의 모든 행위를 부정하고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게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택함심으로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가 이제는 그 이스라엘도 버림받고 새로운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 거룩한 피로 용서받은 은혜를 아는 자들이 새로운 이스라엘입니다. 이들은 혈통적 이스라엘과는 무관하고 자기 노력이나 행위로 된 자들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행우로 이스라엘 된것이 아니였던 것과 같이 새로운 이스라엘(교회)도 은혜로 된 자들입니다. 그 은혜를 입은 자들은 자기 행위로 된 것이 아님을 알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믿고 감사하는자로 살게됩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우리 인생은 언제나 자기를 부인할 존재(에덴에서 쫓겨난 암담과 하와의 후손이기에)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아는 것도 은혜이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성도)는 무엇을 하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감사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자가 자기 행위를 들고 하나님을 찾을수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기도할수도 없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기도한다면 오직하나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로 구속받은 은혜만 감사하며 살도록 믿음의 지혜를 구하는 것 뿐입니다. 이런 은혜를 입은자가 성도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매순간 자기를 부인하며 살게 됩니다. 부인하는 것이 은혜를 입었다는 증거입니다. 잘했다 생각 도힐 때도 자기 능력이 아님을 알고 부인하고 못하고 악함만 드러날 때도 자기를 부인합니다. 성도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알게 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임을 알게된자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짐을 알고 믿게됩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것입니다. 세상은 오직 자기에게 유익하게 될 때 은혜라 생각하지만 성도는 자기 욕망이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고 더욱 힘들고 어려워져도 주님이 이루어가심을 알고 감사하는자로 살게됩니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예 은혜로 삽니다. 이렇게 은혜로 산다는 말은 나의 삶에 주님이 늘 간섭하시고 간섭하심을 느끼기에 사는 형편과 수준에 상관없이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성도에게 주어지는 은혜는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망하고 미움받고 고난 당함으로 주님안에 살아가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싫어하여 십자가에 죽이기 까지했고 그 주님을 선샌님으로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오늘 주님으로 믿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만 삶의 가치 기준을 두고 살아가기에 세상을 부정하고 악하다 선포하기에 세상으로부터 주님과 같이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8-19)

우리나라 실정에 딱맞는 상황입니다. 박사모들은 촛불집회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고 촛불집회하며 박대통령을 탄핵하는 사람들은 태극기 집회하는 박사모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좌파 빨갱이로 몰아부치기까지합니다. 예수님이 그런 대접을 받았습니다. 사도(제자)들도 동일한 대접을 받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도들도 동일하게 예수님과 길이요 진리요 생묭으로 믿고 세상을 부인하고 모든 종교를 부인하며 자기마저 부인하기에 세상에 속한 사람들로부터 미움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미움 받는 것도 은혜임을 알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살아가게하심도 은혜임을 아는자들입니다. 한마디로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가신 구별된(거룩)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원수된 자리에게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살면서 모든 것을 가진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성도와 세상은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갑니다. 세상을 부인하고 자기도 부인하고 출세도 부인하고 성공도 부인하며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 알고 믿고 감사하고 자랑하는 증인으로 살게됩니다. 세상에서 십자가는 저주받은 자리입니다. 성도에게 십자가는 생명이 시작된 자리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믿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자랑하며 살게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지금 나에게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주님이 그렇게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망하든 흥하든 약하든 강하든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라고 주님이 일으키시는 은혜입니다. 그은혜를 알고 날마다 감사하고 주님의 십자가만 믿고 자랑하는 증인으로 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