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의 설교방

(민13:30-33) "무엇을 보는가?" (2014.6.29)

고물목사 2014. 6. 29. 08:04

(민13:30-33) "무엇을 보는가?" (2014.6.29)

 

눈은 사물을 보라고 만들어 놓았지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소경이 있습니다. 원해서 되는 소경이 아니지만 삶에서 많은 불편을 겪으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살다가 사고나 관리를 잘못하여 소경이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보지 못한 상태로 사는 것은 고통일것이고 보다가 못보면 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런데 보고도 무엇인지를 몰라보면 이도 참 불행한 인생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싶은것만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보든지 이미 마음에서 보고싶은 것이 정해져있어 다른 것은 보지못한다는 말입니다. 흔히 사용하는 말중에 첫인상이란 말이있는데 처음보았을 때 느끼는 상대에 대한 감정이 상대에 대하여 많은 오해를 만들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에 이스라엘이 가난안 땅에 들어가기전 하나님이 미리 정탐꾼을 보내서 그 땅에 돌아보고 어떠한지를 보고오도록 합니다. 하지만 12명중 2사람만 외에는 모두 그 땅은 좋고 기름지지만 그 땅에 사는 민족들이 크고 강해서 도무지 이스라엘이 들어가서 차지할수 없다고 보고를 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10사람의 말에 동화되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모두 죽임을 당합니다.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민14:36-37)

하나님은 악평한자들을 재앙을 내려 모두 죽여버렸고 갈렙과 여호수아 두사람만 살려두었습니다. 여기서 재앙으로 죽임을 당한 10사람은 자기들이 보는 눈이 기준이되어 하나님의 약속이나 일하삼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대로 평가하고 정탐을 보내 모세와 아론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지 못하기에 보이는대로 판단하고 원망하한 결과로 재앙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보지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일하심을 믿은 여호수아 갈렙은 가나안 지역민들의 장대하고 무서워보이는 외모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그 땅에 주시기로 약속했으니 그 약속만 믿고 나가면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민14:9)

그들을 밥이라 표현하면서 약속을 믿고 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일하심으로 그 땅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지 못한 자들은 부정하다가 하나님이 일으키신 재앙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은 구약이나 신약시대 그리고 오늘 우리시대에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보지못하고 육신에 눈에 보이는대로 보고 판단하고 결과까지 예측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부정하는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하고 인간의 경험이나 상식선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서 주님을 찾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들을 복으로 달라고 보채고 울고 떼를 쓰는 것입니다. 즉 보이는 세상 기준에 복을 주님의 복으로 대체하여 그것들을 얻기위해 주님을 찾을 뿐입니다. 그들은 십자가 거룩한 피로 우리죄가 용서되었고 천국에서 영생이 약속된것은 나중에 일이고 당장 세상이 인정하는 복을 달라고 성화(보채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으면 복받았다하고 얻지못하면 복 받지못햇으니 신앙생활 잘못한 것으로 치부합니다. 오직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자되고 장수하는 것이 복받은자요 단명하고 가난하고 실패한 인생은 하나님의 복을 못받은자로 처리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마19:23)

주님이 무어이라하였든지 자기들 눈에 보이는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웃고 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맞추어 사람을 평가하고 원망도하고 무시도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나 모세시대 정탐꾼들의 모습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한자들에게서만 여호수아와 갈렙의 고백이 나옵니다. 성령안에서만 세상을 시시한 것으로보고 세상이 인정하는 복을 배설물처럼 여기며 살게됩니다. 세상을 부정하고 세상 복을 시시하게 여기며 자기 공로를 배설물로 취급하지못하는 자들은 진정 성령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주님을 믿어 세상에서 잘되고 천국도 가자를 외칩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이들은 주님께속하지 않앗으면서도 주님께 속했다하고 주님이 부정한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함이 주님이 주시는 복이라고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저들은 세상에서 출세나 부자됨이 복받은 것으로 주장하니 주님도 저들앞에서는 꼼짝못하고 저주받은 자가됩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복을 삼고 살고 있습니까? 진정 죽엇지만 부활하셔서 자기 백성을 성령으로 다스리시며 세상을 미워하는자로 살게하시는 주님을 믿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세상에서 주는 복을 얻기위해 주님을 이용하십니까?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