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의 설교방

(요21:18) "발걸음을 인도하심" (2013.7.7)

고물목사 2013. 7. 7. 07:42

(요21:18) "발걸음을 인도하심" (2013.7.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사람은 철이 들면서 누군가에게 간섭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할수만 있으면 언제든지 독립할 기회를 욧보게되고 조금 불안하고 위험을 감수할지라도 스스로 잘해보려고 애를 쓰게됩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격려와 칭찬을해서 더 잘할수 있도록 희망을 심어주기를 원합니다. 좀더 노력하면 더 잘할거야 힘내고 한번더 한발짝 더 나가도록 화이팅 하세요라고 말이다. 반대로 그렇게하면 당신 실패하고 망하고 나중에 재기하기도 어렵다고말하면 부정적인 사람취급받고 나중에는 상종도 안하려 합니다. 그래서 교회이름을 꿈의 교회라하기도하하고 어느 목사는 부정적인 말을하는 사람은 마귀의 사롭잡힌 것이라 하기도합니다. 결론은 부정적이지말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며 희망을 주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란 말이다. 듣기는 좋은 말인데 목사가 할말은 아니고 특히 부정적인말은 사단의 말이라는 말은 정말 저런 인간도 목사인가할정도다.

왜냐하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한번도 세상에 대하여 긍정적이거나 희망적인말을 하신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예수님을 믿는 목사라면 당연히 부정적인 입장에 서게되어있고 세상을 사랑하지말라해야하는데 어찌 부정적인말을 사단이 주는 것이라 할수 있느냐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목사에게는 예수님도 사도들도 결국 사단의 활동중 하나라는 말이 되지 않을까? 물론 본인은 자기가 무슨말을하는지도 모르고 사단의 앞잡이 노릇을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16:2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5:3)

사단에 사롭잡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사도와 성도들을 속이다가 부부가 한날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속아도 속은줄을 모르지만 성령께서는 결코 속지 않으시고 속이려는 부부가 죽임을 당하게됩니다. 지금 그렇게 성령께서 즉결 심판을 안한다해도 말씀이 아닌것을 사람들이 듣기좋게 거짓을 전파한다면 그가 어찌 목사고 성도이겠습니까? 목사나 성도는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꿈이나 희망을 갖게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은 미워하고 부정하고 그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는 자신마저 부정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거룩한 피를 바라보고 믿고 사는 자 입니다. 성도는 결코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천국 시민으로 세상을 살게됩니다. 그렇한 삶은 우리가 스스로 각성하고 다짐해서 살아지거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께서 성도(택한 자)에게만 그런 믿음을 주십시다. 성령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자가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정하고 주님의 십자가 거룩한 피만 믿고 찬양하고 자랑하며 살게됩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5: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그 성령께서 제자인 베드로를 원하는 대로 이끌고 가시겠다는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젊어서(모든 인간이 사는 방법)는 자기 방식대로 자기 힘만믿고 까불겠지만 늙으(성도)면 팔을 벌리고 누군가가 이끌고 가는대로 끌려가게됩니다. 늙은이는 힘이 없으니 누가 끌고가도 저항을 못하고 끌고가는 자(성령)의 의하여 살게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베드로는 이후로는 주님의 성령에 사로잡혀 살게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성령이 임하시기전에는 자신의 힘(젊음)만믿고 스스로 원하는 곳으로 다녔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한후에는 베드로가 자기힘으로 자기 방식대로사는제자가 아니라 성령께 이끌려살게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는 베드로나 사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성도(세상에서 구별된 사람)들도 동일하게 성령안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 공로만 믿고 찬양하고 자랑하는 증인으로 살게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사람이 그렇게 살려고 다집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한자에게서 성령의 열매가되어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한 사람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 거룩한 피만 믿고 자랑하며 살게됩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

성령안에서 날마다 자기는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 거룩한 피만 믿고 찬양하는자가 사람의 눈치를 볼리없고 사람을 기쁘게하지도 않습니다. 죄인의 눈치를 보는 것은 같은 죄인이 그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만 성도는 주님의 십자가로 모든 죄가 용서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영생이 주어졌음을 믿기에 사람에 눈치를 보지않게됩니다. 비롯 사람은 우리를 해할지라도 주님의 십자가로 죄가용서되고 의롭다함을 얻은것에는 전혀 영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에게 그런 주님이 찾아오셨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이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세상을 두려워하지않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하십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포기)하고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사는자가 성도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결코 자기를 내세우지않고 자기 영광을 위하여 살지않으며 자기행복을 위해 사는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그런데도 여전히 순간순간 나만 위하려 살려고 발버둥치는 나를 보면서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볼수밖에 없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말씀대로 사는자가 아니라 성령께 인도(이끌려)사는 자입니다. 말씀을 지키는자가 아니라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알고 말씀성취를 찬양하며 자랑하는 자로 살게됩니다. 이후에 베드로는 자기 원치않는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게되는데 그것이 성령께서 그렇게 베드로를 이끌어가셨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만이 아니라 오늘 성도에게는 동일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베드로처럼 죽임을 당하지는 않지만 살동안 주님안에서 핍박과 환난을 당하는자로 살게됩니다. 이는 주님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십자가만 알고 십자가만 믿고 십자가만 자랑하는자로 살기에 세상은 그 십자가를 싫어하고 미워하여 성도를 핍박하게됩니다. 타락한 마귀가 성도를 넘어뜨려보려고 용쓰는 모습이 성도에게는 핍박으로 다가옵니다. 그럴지라도 주님의 성령께서 성도를 붙들어서 결코 넘어지거나 주님의 십자가를 부정하지않게하십니다. 그 믿음이 주어졌기에 베드로나 사도들이 죽임을 당하면서도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오늘 성도는 그 주님의 십자가 거룩한 피 흘려 대속제물되어주심을 알고 믿고 감사하며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게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당신은 무엇을 자랑하는 사람입니까?

주님의 십자가입니까?

십자가외에 다른 무엇입니까?

십자가만 알고 믿고 찬양하고 자랑하는 증인으로 살게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성도를 그런 자리로 이끌고 가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