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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은 어떤 식으로 단합해야 하나? - 이근호 목사

고물목사 2010. 7. 5. 07:31

교인들은 어떤 식으로 단합해야 하나?

 

예배 마치고 교인들은 무얼해야 할지 우왕좌왕한다. 어떤 이들은 아예 집에 갈 생각을 한다. 어떤 이들은 식사하고 집에 갈 생각을 한다. 도대체 교회 오는 것이 예배 관람하는 것 이외에 다른 할 일이 특별히 없다고 여긴다. 누가 자기 보고 “집사님 오늘 이것 하세요” 시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할 일이 없는 걸까?

 

교회에서 할 일이 없거나 교회에서 높은 사람(?)이 자기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서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교회 오면서 여전히 ‘내가 해야 할 나만의 것이 따로 있다’고 여긴다는 점에 있다. 쉽게 말해서 교회 나오면서 여전히 ‘내 것은 따로 챙겨놓았다. 집에’라고 생각하면서 교회 나오는 것이 문제다.

 

교인들이 잘못하는 바는 이것이다. 교회 나오면서까지 자기 몸이 자기 것이라고 여긴다. 뿐만 아니라 내 몸이 내 것이기에 내 인생도 따로 있고 그 따로 있는 내 인생을 위하여 교회 나오는 날에도 끊임없이 나를 위한 일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나오는 것은, 아니 교회 나와 주는 것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의 일에 잠시 일손을 멈추고 몇 시간동안 하나님에게 양보해준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성이 워낙 좋아서 그렇단다. (남들은 교회도 안 나오는데 자신은 바쁜 가운데서 왕래해주었으니)

 

그러니까 평생을 두고 교회는 나오더라도 절대로 말씀의 집, 말씀의 구조 속에는 안 들어가는 것이다. 말씀의 집 속에 들어가게 되면, 그동안 내 것이라고 여긴 것이 실은 예수님의 것이며 그 예수님의 것을 악마가 나를 부추겨서 “내 것이라고 우겨, 계속해서 우기만 말이야!”라는 사주를 강력하게 받으면서 살아오고 있음이 들통나게 된다.

 

그러니까 교회는 나오되 말씀 세계 속에 안 들어가면, 그 사람은 여전히 자기 것에 대해서 빈틈없이 부지런히 챙기는 성실한 사람으로 계속 남게 된다. 어느 정도로 성실한가하면, 교회 가서도 자기 것을 망각하지 않을 정도이다. 이처럼 말씀 세계에 안 들어오면, 자기 것을 성실하게 챙기는 자아가 그토록 기특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반면에 교회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 세계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그 말씀의 세계 안에서 애시당초 자기 것은 하나도 없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자기 몸을 비롯해서, 자기 목숨, 자기 자식이나 자기 가족이나 자기 사업체나 직장이나 은행의 예금까지 어느 것 하나 자신의 것이 아님을 새삼 고백하게 된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예배 마치고 본격적으로 할 일이 많아진다. 예배 시간에는 목사만 시간을 독점해서 일방적으로 떠들었지만 말씀 세계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예배 마치고 본격적으로 궁금한 것에 대해서 더 깊이 물어보고 증언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즉 “저는 내 것이 아예 없다는 사실이 어째서 그러한지 좀 더 깊이 알고 싶습니다. 성경의 어느 대목에서 우리 자신의 인생이 아예 죄인이라는 것이 어디 나옵니까?”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묻게 된다.

 

공짜로 물으려니 미안하니, 식사당번하고, 청소하고, 예배 준비하고, 헌금하고, 봉사하면서 물어보게 된다. 교회 올라오는 계단도 혹시 더러운지 아닌지를 살펴보게 되고, 손수 물걸레질을 한번 하게 되고, 혹시 현광등 갈아 넣을 때가 되었는지 어떤 지를 살펴보게 된다. 왜냐하면 이 교회 때문에 ‘내 것이 아예 없음’이라는 진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것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되면, 교회 와도 자존심 유지에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혹시 내가 말 실수 하지 않았나? 혹시 나의 대표 기도가 남들에게 웃음거리 감이 되지 않았나? 에이, 이런 고민할 것 없이 차라리 누구도 손 못 대는 내 것이 따로 엄연히 집에 있으니 집에 가서 내 것이나 만지작거리며 노는 즐거움에 빠지자”라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오류는 말씀 구조 밖에서 보는 안목 때문이다. 말씀 세계 밖에서 복음을 듣게 되면, “지금도 괜찮은 나, 복음까지 믿으면 천국에 가는 괜찮은 존재로 유지될 수 있다”로 들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말씀 세계 안에서 복음을 듣게 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진작 저주받아야 될 자, 오늘도 예수님의 피가 나를 살렸구나. 이제 나는 내 것을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것을 위해서 존재하게 되었구나.”로 들리게 된다.

 

예배 쇼 관람하고 난 뒷 시간, 교인들은 무엇으로 단합되어야 하는가? 말씀 세계 안에서는 나의 집, 나의 직장, 나의 가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없고 오직 말씀의 세계 속에 더 깊숙이 들어가는 세계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말씀의 능력으로 날마다 낯선 세계로 이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아무도 믿지 않더라도 홀로 믿어지는 그 말씀 세계 안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해야 한다. 그 안에서 비로소 말씀 세계 속으로 같이 이끌려온 형제, 자매가 귀하게 여겨진다.

 

내 것에 염두에 두면, 그것으로 인해 말씀 세계를 멀리하게 된다. 죽어도 자기만의 세계를 고수하려 한다. “그동안 어떻게 가꾸어 온 나만의 세계인데… 왜 이걸 포기해” 하지만 그 나의 것이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간다. 왜냐하면 점점 예수님을 멀리할 수 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내 인생을 망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예배 마치고,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나의 것도 없고, 너의 것도 없는 그런 시간을 말씀의 시간 안에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