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9:59-60) "죽은자를 위하여?" (2016.3.6)
(눅9:59-60) "죽은자를 위하여?" (2016.3.6)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마8:22)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눅9:60)
혹시 누군가가 당신에게 죽은자야 거리 꺼지라한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화를 낼수도 있지만 어처구니 없는 표정이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상대를 미친자 취급하고 웃고 넘어갈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세사람이 등장하는데 첫번째 사람은 주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서 제자로 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사람에게 여우도 굴이있지만 난 머리둘곳도 없다하심으로 거부하는 듯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번째가 오늘 본문에 그 사람에게는 나를 좇으라하실 때 그 사람은 부친이 죽엇으니 장사하고 와서 좇겠다고하실 때 죽은 자들로 죽은자를 장사하게하고 너는 그냥 지금 나를 따라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번째 사람이 자기도 주님을 좇아가겠지만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하고 따르겠다고 하실 때 소를 앞세워 쟁기질을하는자가 뒤를 돌아보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자가 아니라하셨습니다. 모두 주님의 제자가 되라와 되려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며 상황을 통해 누구나 마음먹은대로 주님을 따라갈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에 생각 하는 주님을 알고 믿고 주님의 제자로 살겠다는 다짐을 무색하게 만드는 말씀들입니다. 특히 도덕 윤리를 기본적인 인성으로 삼고 평가하는 우리 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는 주님의 말씀을 볼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
주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형제를 사랑할 때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인정된다고 하셨는데 주님은 아버지의 죽음마저도 관여하지말고 죽은자들에게 죽은아버지를 장사하도록 두고 너는 나를 따라오라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형제와 죽은자가 같은 종류의 사람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형제는 주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자들을 통틀어 하신 말씀입니다. 결코 아버지나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 나라는 유교의 전통으로 관습화된 예의 범절을 기본 바탕으로 예의 범절이 형성되었기에 보이는 아버지나 형제 자매를 마침 성경에서 말씀하는 형제나 자매로 오해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비록 우리 가족은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믿음안에서는 반듯이 가족이라 할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가족이고 형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을으로 믿고 주님안에서 새로운 사람(가치관의 변화)으로 거둡난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게 믿음안에서 형제 자매가 아닌 일반적인 우리들의 가족은 육체에 의한 가족이지만 믿음안에서 형제 자매는 아니란 말입니다. 결국 제자들이 말한 형제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나를 따르라에 순동하는 자는 같은 부류이고 육신의 죽은 아버지를 걱정하는 그 사람은 아직 주님을 따를 마음이 없음을 구별하신 것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우리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정서와 예의 범절에 기초로한 상황에서 보면 주님은 이상한 분입니다. 자기 가족들과 형제자매들 까지도 미워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따라오라하시니 말입니다. 결국 우리들의 시각으로는 주님을 알수도 없고 믿을수도 없고 따라 갈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누가 자기 부모의 죽음을 뒤로하고 주님을 따라갈수 있습니까? 만약 누군가 주님이 따라오라해서 아버지의 죽음을 알면서도 장사를 안하고 따라가면 그것은 또 주님을 믿는 것일 까요? 아닙니다. 따라가고 안 따라가고 장사를 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선택하고 안하고의 문제 아니란 의미입니다. 우리 인생(죄인으로 출생해서 죄인으로 살다가 죄가운데 죽는 모든 인간)은 누구도 스스로 주님을 알고 따르고 믿을만한 지헤도 믿음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주님 쪽에서 선택하시고 주님이 끌어당겨주실 때만 가능한 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주님이 성령으로 보내셨고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주님을 안다고하고 믿음을 고백하게된 것입니다. 바로 이런 믿음이 느껴지지 않으면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가식(외식)이되고 거짓선지자들처럼 입으로 주님을 믿는자로 살게됩니다. 그런 자들을 주님은 죽은자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자는 같이 죽은자들이 장사를하고 서로 죽은것을 모른체 육체의 죽음만 죽음으로 인식하는 어리석은 지옥 백성으로 살게 내버려두고 살아있는자는 주님을 증거(하나님나라)하는 주님의 제자로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배당에 얼마나 자주 출몰하고 예배시간에 얼마나 잘 참석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의 생명이시고 하나님 아버지께는 영광이심이 믿어지느냐 입니다. 그런 믿음이 없이는 주님을 아무리 따라다녀도 천국과는 상관없는 지옥 백성으로 살다가 지옥으로 갈것이란 말씀입니다.
이것은 결코 할머니가 기도해주고 어머니가 기도해서 믿음이 생겼다는 고백과는 상관없는 주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믿음이 주어진 자에게서만 고백되어지는 믿음입니다.
(극동 방송에서 어느분이 할머니의 기도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결국 할머니의 기도가 3대에 걸쳐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 집안이 되엇다는 고백)을 하는 것과 주님을 알고 믿는 믿음은 별개입니다. 성경은 한번도 우리에게 믿음을 개발하거나 스스로 키워가도록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착각하며 살고 교회당만 오락가락하고 있을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7:22)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성도되고 주님의 제자로 살다가 천국 가는 사람은 부모님의 신앙이나 조상들의 믿음을 본받아서 되는 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배워서 믿음이 생기거나 가르쳐서 신앙인으로 키워지는 것도 아니란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안에서 은헤를 입은자(믿음을 선물로 받은)가 성도요 자기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는 자로 살면서 주님의 십자가 거룩한 피만 믿고 자랑하며 살게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죽은자(육신에 형제 자매 처자)
에게 아부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죽은자라고 선포함으로 그 형제 자매 처자식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핍박과 조롱을 당하는 자로 살게됩니다. 오직 성도에게는 주님의 십자가 외에는 가치가 없고 배설물에 불과한자로 살아가는 세상으로부터 핍박받기로 작정된 자들입니다. 당신에게는 죽은자와 살아잇는자를 구별하는 성령의 지헤가 있습니까? 그런 지혜가 주어진 자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정하고 주님의 십자가 거룩한 피로 우리죄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만 믿고 그 사랑의 결정체인 주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는자로 살게 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죽은 자들은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주님의 십자가만 믿고 자랑하는 복을 받은자로 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