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9:13-34) "죄를 아는가?" (2015.3.15)
(요9:13-34) "죄를 아는가?" (2015.3.15)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진리가 시대를 따라 변한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죄를 구분하는데 두가지로 보여줍니다. 구약에서는 행동으로 하고 안하고를 죄로 보고 죄인을 잡아 죽이거나 죽을 죄가 아니면 대속제물을 드려 죄를 용서받게하셨습니다. 하지만 신약에서 주님(예수 그리스도)은 죄를 행위로만이 아니고 마음으로 계획한것까지 확대하여 해석을하십니다. 즉 죄는 우발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에 계획에서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면 바리새인들처럼 안식일을 지켰느냐 지키지 않았는가, 또는 주일을 지켰느냐 안지켰느냐로 죄를 규정하게됩니다. 오늘 말씀에 유대인중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소경된자의 눈을 뜨게했다고 죄인을 취급하며 고발합니다. 이들에게는 소경된 사람은 온전한 죄인이고 죄인을 상대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안식일을 범하는 죄인이라는 시각입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요9:34)
바리새인들이 한가지는 제대로 보았습니다. 소경이 온전히 죄가운데서 출생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저들은 예수님을 비난하기위해 소경을 죄인이기에 소경을 출생했다고 말한 것이지만요. 실은 모든 인간(예수 그리스도는 제외)은 온전한 죄인으로 죄가운데 출생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죄를 해결할 길이 없음으로 하나님이 율법에 제사법을 주셨지만 같은 죄인인 제사장도 자기를 위하여 먼저 제사하여 용서받고 백성들의 죄를 위해 제사를 대신 드려줬습니다. 그러니 늘 반복적인 대속의 제사를 드려야했기에 많은 제사장(아론은 후손)들이 필요했고 제사장을 돕는 레위지파가 봉사를 해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주님은 그 모든 제사법을 완성하러오신분입니다. 한번에 완전한 제사를 드려 영원한 대속제물이 되려고 오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창조주이시면서 자기 피조물들의 죄를 대속하러 오신 주님은 율법을 범하는 분이 아니라 완성하실분입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주님을 알수도 믿을수도 없으니 율법으로 주님을 정죄하기만합니다. 그런데 소경된자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 말처럼 죄인이라면 하나님께로 온자가 아니니 자기 눈을 뜨게할수도 없다고 합니다. 소경이 본다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당신들이 진짜 소경이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책망을 합니다. 육신의 소경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불편할 뿐입니다. 진짜 소경은 영적으로 된 소경이며 주님을 몰라보는 진짜 무지한 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미 2015년전에 십자가지시고 자기 백성의 죄를 대속하신 주님의 거룩한 피를 흘려 대속하신 십자가(십자가 공로)를 믿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되심은 우리 죄의 근본을 없애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금까지 지은죄와 앞으로 죽는 날까지 지을 죄를 모두 모아모아서 용서하셨음을 믿는것입니다.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달아 아는자만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하지만 많은 사람(성도라하고 목사라하는)들이 오해와 착각을 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었으니 이제부터는 죄를 짓지 않는자로 살자는 말입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죄를 짓지않고 살수가 없는 죄인의 몸으로 사는 의인입니다. 즉 몸은 여전히 죄의 몸이라서 죄를 생산하며 살수밖에 없다는 현실입니다. 일부러 죄를 지어라는 아니지만 죄를 짓지말자도 안통한다는 말입니다. 법이 무서워서 또는 양심에 가책으로 보복이 두려워서 등의 이유로 죄를 어느정도 자제는 하지만 죄를 범하지 않는 성도로 살자는 말은 넌센스 입니다. 우리는 구약시대처럼 행위로 죄를 규정하는 시대를 사는자가 아니라 마음으로 품은 것부터 죄로 보시는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3:15)
성령께서 여전히 우리를 죄가운데 사는 죄인으로 발견되게하셔서 주님의 십자가 거룩한 피로 죄를 용서받음은 매일매일일어나는 기적임을 알게하십니다. 그 대속의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죄를 짓지않기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다만 우리는 나의 죄를 매일 매순간 발견하고 자신을 부정하고 주님의 십자가 거룩한 보혈의 은혜와 능력만 믿고 감사하고 자랑할뿐입니다. 죄 안짓는 의인으로 살려는 착각을 버리는자가 성도입니다. 날마다 죄가 들통나고 발견됨이(일부러 죄를 지으라는 말이 아니라 자연스런 죄가 나오는 자기를 발견) 감사할일이고 은혜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죄가 생산되는 죄인(나)을 대속하신 그 주님의 십자가 구속의 능력의 대단함을 아는 것이 복이고 은혜고 주님의 십자가 능력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만 믿고 찬양하고 자랑할수밖에 없는 성도로 살게됨이 날마다 감사할 일이됩니다. 당신은 그런 복(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십자가만 믿고 자랑하는 증인(자신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으로 살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