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3:17-18) "여호와로 기뻐하리라" (2013.7.28)
(학3:17-18) "여호와로 기뻐하리라" (2013.7.28)
웃는 사람은 웃을 이유가 있어서 웃는 것을 보는데 원하는 뭔가를 얻엇거나 기분이 좋거나 몸이 평안하거나 자기 자신에게 유익할 때 웃습니다. 특별히 허탈해서 헛웃음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반듯이 웃을 만한 뭔가 조건이 충족되어야 웃는 것이 우리 죄인들입니다. 늘 부족하고 없고 빼앗기고 망가진데도 웃는 사람은 결코 진짜 웃음이 아니라 헐탈함과 낙담에서 실없이 웃는 웃음 입니다. 그런 죄인이 기뻐할수 있는 것도 자신이 원하는 뭔가를 얻엇을 때 기뻐하는 것이지 잃어버리고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선지자는 어려운 현실(원수가 에워싸고 휘협하는)가운데서 살아서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는 기도입니다. 이는 오늘 교회에서 목사들이 미리 감사하면 복을 받느다는 차원으로 하는 기뻐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많은 목사들이 교인들이 당장은 어렵지만 그래도 기뻐하고 감사하자 미리 감사하면 그 감사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하박국선지자는 그런 계산으로 미리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세우실것을 믿기에 눈앞에 열매가없어 소출이 없고 짐승이없을 지라도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기뻐한다고합니다. 다른 계산을 하고 미리 기뻐하면 미리기뻐하는 것을 보고 믿음 좋아보여서 하나님이 나중에 복주시는 차원이 아닙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8)
주님의 제자들은 먹을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만족)할줄 알아라고 합니다. 부자로 살아야 하나님이 복주시고 가난하면 저주 받앗다가 아니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수준이면 그것이 하나님 복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물질적 부피로 계산하지말고 살아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때만 나올수 있는 감사입니다. 선지자는 현실적으로 무화과나무 열매도 포도나무 열매도 없고 감람나무 열매없으며 밭에소출도없고 외양간에 양도 소도 없지만 즐거워히리라 합니다. 선지자의 즐거움이나 기쁨은 물질에 있지않고 살아서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현실이 어찌되는 하나님이 이끌고 가심을 알기에 하는 감사의 기도요 노래가되는 것입니다. 미리 즐거워하고 기뻐해서 하나님의 복을 끌어내자는 계산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교회는 자꾸 물질적 게산으로 미리 기뻐하고 감사해서 하나님의 복을 끌어 내리자고 합니다. 미리 감사 가불(월급을 미리 받아냄)해서 감사를 하면 그런 정성을 보신 하나님이 복을 줄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감사는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세상의 복으로 하나님의 복을 대체하려는 노림수에 불과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진짜 이스라엘 된 성도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임을 알고 사는자 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 복을 하늘로부터 끌어내리기위한 계산을 하는자가 아니라 지금 주어진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아는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굶게도하시고 배부르게도하시고 매이게도하시고 놓이게도하시는 분임을 알때 진정한 감사가나옵니다.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굶기지도 무시당하지도 패배하게도 안하신다고 생각하면 그런자에게서 나오는 감사는 거짓이됩니다. 선지자 시대에도 포로로 잡혀가고 죽임당하고 나라를 빼앗기고 멸시을 당해도 여호와를 바라보고 기뻐했습니다. 오늘 교회도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멸시당하고 무시당하며 빼앗기고 심지어 죽임을 당한다해도 주님은 자기 백성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심을 알고 믿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게됩니다. 당장 어려움을 극복하지는 못하니 나중에 회복시켜줄것을 계산해서 미리감사하는 그런 감사가 아닙니다. 구약은 그래도 물질적인것으로 복을 설명해주었지만 신약은 물질이 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믿음을 받은자가 복받은자라고합니다. 그 복을 받은자는 세상에서 잘되고 못되고로 울고 웃는자가 아니라는 말이고 더 얻고 못얻고가 감사의 조건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소출과 상관없이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거룩한 피로 우리죄를 대속해 주심)를 알고 믿는 믿음으로 감사하고 즐거운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오늘 성도는 구약의 여호와로 즐거워한 선지자들처럼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의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로 즐거워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화과도 포도도 양도 소도 없지만 월급타니까 즐거워하고 기뻐하는것이 아닙니다. 월급을 타도 장마로 채소가 망가지고 폭등하거나 구제역으로 소나 돼지가 다 죽으면 먹을것도 입을것도 사라집니다. 그러니 보이는 것이 감사의 조건이 될수 없고 오직 영원히 변치 않는 주님의 십자가 거룩한 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자가 성도요 성도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선지자와 성도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자기를 중심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시고 우리는 그 영광에 동원된 도구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도구로 사용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뻐하는자가 성도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어느 수준에 살아도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감사하는자로 살게됩니다. 이런 성도는 스스로 되어지지 않고 주님이 택한 자들에게 보내주신 성령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성도는 주님의 십자가를 알고 믿고 자랑하는 증인으로 살면서도 자기에게 아무공로도 돌리지않고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는자로 살게됩다. 그것이 성령의 열매로 사는 성도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오늘도 성령께서 성도로 주님의 십자가 거룩한 피만 바라보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자랑하는 증인으로 살게하십니다.그래서 십자가만 바라보고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하게하십니다. 그런자가 성도요 목사요 그리스도인이요 증인입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로 그런 믿음안에서 주님만 바라보고 감사하고 기뻐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