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의 설교방

(롬8:31-34) "아들과 함께? (2009.12.20)

고물목사 2009. 12. 20. 10:28
2009년 12월 세째주 주일 예배

신앙고백(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

찬송14장 (구세주를 아는 이들)

(롬8:31-34) "아들과 함께? (2009.12.20)


가끔 미혼모가 아기를 출산하여 화장실이나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이 뉴스에 등장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 사람은 한마디로 아직 철(자녀에대한 책임감이나 생명의 소중함)이없다고 해야할 것이며 스스로 감당할수 없어서 그런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물론 원하는 아이였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축하할 상황이었다면 감히 살아있는 아이를 낳아서 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요즘같이 아이를 낳으면 양육에대한 어느정도 지원도해주고 만약 평생 국가에서 책임을 져준다면 그런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혼모에 원치않는 아이를 임시하여 숨어서나 주변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스스로 감당할 능력이 없으면 괴로움속에서 출산을하고 버리기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이구요 대부분 부모라면 자기가 낳은 아이를 버린다는 것을 상상도 못할것입니다.
삶이 피곤하고 어렵고 괴로운 삶이라해도 모든 부모들은 자기 자녀만큼은 더 좋은 옷 입히고 맛있는 음식 먹이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슴도치도 제자식은 이뻐보인다는 말이 생겨났으니 비교해서 사람에게 자기 자식은 얼마나 이쁘겠냐는 말입니다.
사람들 눈에보면 고슴도치는 가시에 둘러쌓여 보잘것없는 동물이며 귀여움이전혀 없어보이지만 부모에게는 그 고슴도치도 자식이기에 당연히 이쁘고 귀엽다는 말입니다.
이는 부모의 심정을 너무나 잘 표현한 것이며 사람이며 부모가되어보면 자기 자식에대한 사랑이 얼마다 남다른가를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힘이나 뭐로도 자식을 능가하지만 사랑하기에 져주는 부모란 의미)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부모들은 자식을 대신해서 죽기라도하고 자기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고 아끼는것을 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그런 자식(독생자)을 아무죄도없으신데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셨다고 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모든 사람(사람은 모두 죄인 뿐인데 그런 사람 때문에)을 위하여 내어 주셨다고 하십니다.
내어주셨다가 한번 사용하고 돌려주는 물건처럼 내어주셨다가 아니라 내어준 아들은 죽음을 위하여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저주를 받은 죄인들을 위하여 내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람들도 자기 자식만큼은 자신보다 더 귀하여여기고 본능적으로 보호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이 독생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할수도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자식을 사랑한다 아낀다해도 실상은 책임질 능력(고작해야 먹이고 입히는 정도만 가능)도 없으면서 보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실상은 사람은 자식은 고사하고 자신마저 보호할수 없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누구도 침범할수 없는 영역에 게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독생자를 내어주셨다는 말은 사람이 자기 자식을 다른사람을 대신해서 내어줬다는 말과는 비교도할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죄로 말미암아 병들거나 나이많아 늙거나 사고로 누구나 죽을 운명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죽음이라는 것이 필요없는 창조주이시며 인간들과 같이할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인간들(죄인)을 위하여 독생자를 내어주시는데 아끼지 않으셨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아들은 세상에 와서 할 일이 있는데 그 일이라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사람들에 상식에서 생각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당연히 누가봐도 당당하고 위엄있으며 인정할만한 모습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호령한마디에 산천초목이 벌벌떨어야하고 원수는 말 한마디로 모두 소멸시키는 그런 위엄으로 오셨어야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바램이고 하나님은 독생자를 내어주신 이유가 따로 있었으니 곧 십자가에 죽게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의 잘못은 전혀 없는데 못되고 악하고 저주로 영원한 형벌을 받을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시기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도안되고 인정할수도 없으며 말도 안되는 그런 상황을 연출하기위하여 하나님은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식은 죄를 지어도 숨겨주고 누구에게도 해를 당하지 않기를 원하는데 말입니다.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아담과하와를 만들며 되실분이신데도 그리아니하시고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이말은 결코 우리 인생들이 너무 소중해서 하나님이 아들을 대신 죽이고 죄인들을 살려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많은 목사들이 그렇게말하기를 우리는 천하보다 귀하고 특히 나는 소중하기에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가르칩니다.
결코 독생자를 내어주셨다고 내가 소중하고 귀하여서라는 말은 말이 되질않습니다.
인생은 죄인이기에 죄인이갈 사망(지옥)으로 가야마땅하지만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독생자를 내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이는 결코 인간(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소중하고 값어치가 있어서 하나님이 아들을 대신내어주고 우리를 살리신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특히 목사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거나 여전히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어리석은 죄인에 불과 합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심은 우리가 소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함을 알게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한다고하지만 그 사랑이 반드시 자기에게 뭔가 이익이 될 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도 내 마음에드는 어떤것이 있어서 사랑하고 그것을 소유하려는 마음이며 여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해가되고 사랑하면 상대를 죽이거나 내가 죽는다는것을 안다면 사랑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런 이기적인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비교가되지 않고 비교할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내어주시면서 죄인을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을 받은 죄인들(우리)은 하나님을 모르고 은혜도 모릅니다.
심지어 주님의 12제자마저 주님의 사랑을 모르기에 주님이 십자가에 죽는것을 만류했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16:21-23)

그 베드로처럼 오늘 우리도 주님을 모르기에 자기 이익을 따지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믿는다 할 때도 돌아올것을 고대하며 믿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시므로 죄를 사해 주시고 그 주님을 알고 믿도록 믿음을 주셔서 사랑을 감사하게하십니다.
도무지 인간들 스스로는 하나님을 모르고 사랑도 독생자도 모르기에 성령을 보내셔서 알고 믿게하십니다.
믿지않고 믿을수도 없는 어리석은 죄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알게하시고 믿게하셔서 구원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독생자를 대신죽게하신)를 입은 자(성도)를 누구도 송사하거나 정죄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독생자를 주셨고 십자가에 대신죽게하셨고 죽은자가운데서 살아나셨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는 주님을 믿는 성도라면 그는 하나님의 의하여 의로운자가 되었습니다.
의인으로 살아서 의로운자가 아니라 믿음안에서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의롭다고 봐주심으로 의인이된 것입니다.
그래서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선포를 누구도 잘못되었다 송사하거나 정좌할수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셨으면 더이상 말이 필요없고 누구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변호하고 재판을 받고 재심을 신청하고 대법원까지가서 다시돌려보내고 하지만 하나님은 한번 선포하심으로 모든것이 끝입니다.
그 하나님의 선포가 있었다면 더이상 하나님께 잘못된 판결이라도 말할수 없고 말ㄹ해도 소용 없습니다.
바로 성도는 그렇게 만들어지기에 성도 자신이 자기를 책임지려고하지말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책임지고 다이루신 것을 믿고 감사하며 사는자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그 주님을 알고 믿고 주님이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자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믿고사는자들입니다.
그들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 보혈만 바라보고 기뻐하기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시시하게 여기며 살게됩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를 사로잡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찬송101장(천지에 있는 이름중)

폐회(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멘.